Thursday, September 24, 2026

환경경제학

환경경제학

 

환경경제학이란 무엇인가?

환경경제학(environmental economics)은 환경과 관련된 경제적 의사결정을 다루는 경제학의 한 분야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경제가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배출과 각종 오염을 비롯한 여러 환경문제로부터 더욱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면서 환경경제학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환경문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익이나 이윤만을 추구할 때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장들은 많은 양의 화학물질을 강이나 바다에 배출하여 수질을 오염시킬 수 있다. 또한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은 산림에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나무를 베거나 바다에서 지나치게 많은 물고기를 잡으면 공유자원이 고갈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고 한다. 즉, 일부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사용하는 자원을 과도하게 이용함으로써 결국 그 자원이 고갈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환경문제와 사회적 책임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자연환경 및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함께 배려한다면 환경문제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기업은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크게 고려하기보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아 왔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기업이 단순히 이윤만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온실가스 배출과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ies)를 줄이고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기업의 목표에 포함시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기업이 사람(people), 즉 사회적 책임과 지구(planet), 즉 환경에 대한 책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 주는 것이 트리플 바텀 라인(triple bottom line, TBL)이다. 트리플 바텀 라인은 기업의 성과를 이윤(profit), 사람(people), 지구(planet)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한다. 즉,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동시에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줄이고 지구를 보호하며, 사회와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트리플 바텀 라인은 기업과 그 종업원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그 구성원들, 그리고 자연환경에도 유익을 가져다주는 바람직한 기업경영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트리플 바텀 라인(TBL)의 성과는 사회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업이 추구할 만한 이상적이고 윤리적인 목표이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목표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기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영리기업보다는 비영리기업에서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소규모 기업은 대기업보다 트리플 바텀 라인의 성과를 추구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생산비용을 낮추어야 하는 반면,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이윤, 사람, 환경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현재의 이윤을 어느 정도 줄이는 것을 감수하면서 트리플 바텀 라인의 성과를 추구하기 시작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여 더 큰 이윤을 얻을 수도 있다.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의 신뢰와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의 환경

인간의 번영은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동물과 새와 물고기, 나무와 식물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창 1:28–29).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가계인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동물들, 그리고 나무와 식물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마련하셨다. 그리고 최초의 사람들에게 그 환경을 돌보고 관리하는 책임을 맡기셨다. 하나님의 본래 창조에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들도 노화하거나 부패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포함한 환경을 돌보고 관리하도록 하셨다. 창세기 2장 15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말한다. 여기서 “지키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마르’(שָׁמַר, shamar)는 “지켜보다(watch)” 또는 “보존하다(preserve)”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과 다른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건강하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생명을 누리며 번성하기를 원하셨다.

성경에서의 환경 보호

하나님께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셨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과 계속 관계를 맺으시며 그들을 인도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창조세계와 자연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잘 돌보며 관리할 책임을 맡기셨다.

환경 보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편을 주는 행동을 삼가게 될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고속도로에 깡통이나 병을 버리거나, 불필요하게 자동차 경적을 울리거나, 밤늦은 시간에 큰 소음을 내는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을 끼칠 수 있다. 경제학에서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비용이나 피해를 발생시키는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ies)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외부효과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형제자매와 이웃뿐만 아니라 나그네와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레 19:18, 34; 마 5:43–44; 22:39; 막 12:31; 눅 6:27, 35; 10:27; 요 13:34; 15:12; 롬 12:10; 13:9–10; 15:2; 갈 5:14; 히 13:1–2; 약 2:8; 벧전 1:22; 4:8; 요일 2:10; 3:11, 14, 23; 4:7, 11, 21).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은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줄이는 출발점이며, 동시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해에 땅을 완전히 쉬게 하심으로써 토지가 회복되고 이후에 더욱 건강하고 생산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25장 1–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곱째 해에는 땅으로 온전히 쉬어 안식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2, 4–5절). 이 안식년에는 사람들이 땅을 경작하지 않더라도 땅에서 저절로 소출이 생길 수 있었으며, 그렇게 난 소출은 종과 품꾼과 거류민뿐만 아니라 가축과 들짐승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이처럼 토지의 안식년 제도는 사람에게만 유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땅 자체에 쉼을 주셨으며, 그 땅에서 나오는 소출을 사람들과 가축과 들짐승이 함께 누리도록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뿐만 아니라 땅과 그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계심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35장 33–3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주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땅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33절에서 “더럽히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네프’(חָנֵף, chaneph)는 “더럽히다”(pollute) 또는 “오염시키다”(defil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2] 이 히브리어는 땅과 관련하여 시편 106편 38절, 이사야 24장 5절, 예레미야 3장 1–2절과 9절, 미가 4장 11절에서도 사용된다. 성경에 따르면 땅, 곧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은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더럽혀질 수 있다. 무죄한 피를 흘리는 살인(시 106:38; 민 35:33), 율법을 범하고 율례를 어기며 언약을 깨뜨리는 행위(사 24:5), 음행과 악한 행위(렘 3:1–2), 간음(렘 3:9),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민족을 더럽히려는 행위(미 4:11)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환경을 더럽히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물리적으로 오염시키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죄와 불의한 행동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더럽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성경에서의 환경에 대한 징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7절에서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라고 말씀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타락했을 때 인간뿐만 아니라 땅도 함께 저주를 받았으며, 모든 피조물은 노화하고 부패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세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아가는 피조물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으며, 피조세계도 부패와 죽음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성경에서 인간의 운명과 자연환경을 포함한 피조세계의 운명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죄와 타락은 인간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과 다른 피조물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는 인간과 자연환경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사야는 이사야서 24장 1절에서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라고 말한다. 또한 3–5절은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자연환경을 잘 돌보고 관리하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의 죄로 인하여 땅과 다른 피조세계도 함께 징벌을 받게 된다. 그것은 땅이나 다른 피조물 자체에 잘못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과 죄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경에서 인간과 자연환경을 포함한 피조세계의 운명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살아가는 땅과 다른 피조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성경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대홍수 이후 인간의 수명은 크게 줄어들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800년 이상을 살았다. 아담은 930세, 셋은 912세, 에노스는 905세, 게난은 910세, 마할랄렐은 895세, 야렛은 962세, 므두셀라는 969세, 라멕은 777세까지 살았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숫자를 그들의 실제 수명으로 보지 않고 상징적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900년이 넘는 긴 수명조차 하나님께서 본래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간에게 의도하셨던 영원한 생명과 비교하면 이미 크게 줄어든 수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잃고 죽음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대홍수 이후에는 인간의 수명이 더욱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 후 땅 위에 인간의 죄악이 더욱 커지고 세상이 부패와 폭력으로 가득 차게 되자(창 6:5, 11),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수명을 120년으로 제한하기로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6장 3절에서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며 마음에 근심하셨다(창 6:6).

노아는 약 500세에 이르렀을 때 세 아들을 낳았으며(창 5:32), 600세가 되던 해에 대홍수를 맞았다(창 7:6, 11). 따라서 성경의 연대기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노아는 약 500세 무렵부터 600세가 되기까지 약 100년에 걸쳐 방주를 준비하고 건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아는 대홍수 이후에도 350년을 더 살았으며, 950세에 죽었다(창 9:28–29).

그러나 노아 이후 인간의 수명은 점차 감소하여 120년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인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초기 세대의 사람들은 400년 이상을 살았지만, 이후에는 200년대로 줄어들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205세까지 살았으며(창 11:32), 아브라함은 175세(창 25:7), 이삭은 180세(창 35:28), 야곱은 147세(창 47:28), 요셉은 110세(창 50:26), 모세는 120세(신 34:7), 여호수아는 110세까지 살았다(삿 2:8). 다윗은 약 70세까지 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시편 90편 10절은 인간의 수명에 대하여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성경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살펴보면, 대홍수 이전 수백 년에 이르던 인간의 수명이 홍수 이후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감소하여 마침내 70–80년 정도에 이르게 되는 흐름을 볼 수 있다. 현대에는 생활환경과 영양 상태 및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다시 증가하고 있지만, 인간의 평균수명은 아직 90년에 미치지 못하며 120년을 넘게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환경의 회복

환경문제는 가까운 장래에 완전히 해결될 수 있을까? 생태학자들과 환경과학자들이 자연환경을 개선하고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노력은 환경의 파괴와 오염을 줄이고 그 진행을 늦추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지만, 피조세계가 겪고 있는 부패의 문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9–23절에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고 말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은 주의 날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궁극적인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피조물도 현재의 썩어짐과 부패의 지배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하듯이, 피조세계는 지금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장차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될 것이다.

그때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동물들, 그리고 나무와 식물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더 이상 노화하거나 부패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간과 함께 부패와 죽음 아래 놓이게 된 피조세계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마침내 회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환경의 궁극적인 회복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환경문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요한은 요한계시록 21장 1–4절과 22장 1–5절에서 새롭게 회복될 세계의 모습을 묘사한다. 새 하늘과 새 땅, 곧 회복된 낙원에는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죽음도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한다. 또한 회복된 낙원에는 생명나무가 있으며, 요한계시록 22장 2절은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말한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더 이상 부패와 죽음이나 환경문제를 염려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범죄로 잃어버렸던 낙원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환경문제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들을 배려하고 자연환경을 책임 있게 돌봄으로써 환경문제를 줄이고 그 진행을 늦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면 본 장에서 살펴본 환경경제학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우리는 자연환경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듯이(창 2:15), 인간에게 자연환경을 이용할 권한뿐만 아니라 그것을 돌보고 보존할 책임도 맡기셨다. 따라서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때 자신의 이익이나 이윤만을 고려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환경오염과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는 개인이나 기업이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과 사회에 발생시키는 비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따라서 개인과 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환경에 불필요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기업은 이윤만을 기업 활동의 유일한 목표로 삼기보다 사람과 환경에 대한 책임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트리플 바텀 라인(TBL)이 제시하듯이, 기업은 이윤(profit)을 창출하면서 사람(people)과 지구(planet)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경영은 단기적으로 추가적인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넷째, 환경 보호는 다른 사람과 다른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이웃 사랑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 및 자연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도록 한다. 다른 사람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환경문제를 줄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인간의 노력만으로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환경 보호의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 따르면 피조세계의 궁극적인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연환경을 책임 있게 관리하고, 환경오염과 자원의 낭비를 줄이며, 다른 사람들과 다른 피조물들을 배려함으로써 환경문제를 줄이고 그 진행을 늦추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결국 성경의 관점에서 본 환경경제학은 인간에게 자연환경을 단순히 자신의 필요와 이익을 위하여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창조세계의 일부로 바라볼 것을 제시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맡은 청지기로서 경제적 필요와 환경 보호 사이에서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다른 피조물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1] Strong’s Hebrew Concordance, “8104. shamar,” 『BibleHub』.

[2] 같은 자료, “2610. chaneph,” 『BibleH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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