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와 공생주의
경제체제(經濟體制)
경제체제에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자본주의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과 수량이 결정되는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다. 반면 사회주의는 중앙정부 또는 중앙계획기관이 가격과 수량을 결정하는 계획경제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순수한 시장경제보다는 혼합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혼합경제에서는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과 수량이 결정되지만, 필요한 경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가격이나 수량을 규제하기도 한다.
자본주의(資本主義)
자본주의는 자원과 시장의 사적 소유(private ownership)를 특징으로 하는 경제체제로서, 자유기업체제(free enterprise system)라고도 한다.[1] 자본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시장을 통한 분권화된 의사결정이다. 오늘날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러한 자본주의의 두 가지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미국은 비교적 이에 가까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과 이윤동기가 기업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점은 경제적 자유이다. 경제적 권력이 여러 경제주체들에게 널리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주의에는 몇 가지 단점도 있다. 첫째, 자본주의는 소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민간시장은 공공재를 적절한 수준으로 공급하지 못할 수 있다. 셋째,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거시경제적 불안정이 발생하여 심각한 경기침체나 심지어 경제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넷째, 시장에만 맡길 경우 환경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할 수 있다.
사회주의(社會主義)
사회주의는 자원의 정부 소유와 중앙집권적인 의사결정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체제이다.[2] 따라서 사회주의의 주요 특징은 자원에 대한 공공 또는 정부 소유와 경제적 의사결정의 중앙집권화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명령경제체제(command system)를 통하여 철강, 전력, 농업과 같은 주요 산업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가 소유하고 통제한다. 그러나 농업, 소매업 및 일부 서비스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시장이 존재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발생하는 시장실패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 한 국가는 생산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의 결과를 반드시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개입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사회주의가 좋지 않은 경제적 결과를 가져오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부 정부 관리들이 부패하거나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갖추지 못하거나 특수이익집단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장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자본과 그 밖의 자원을 정부가 소유함으로써 소수의 개인이나 집단이 국가 전체의 부 가운데 지나치게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공평한 소득분배를 이룰 수 있다. 둘째, 중앙계획기관이 소비재 생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을 배분하고 자본재 생산에는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경제성장을 추진할 수 있다. 셋째, 정부가 고용을 계획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체제에서는 실업을 줄이거나 완전고용을 추구할 수 있다.
반면 사회주의에는 몇 가지 단점도 있다. 첫째, 한두 명의 근로자만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에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 경제적 비효율성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이윤동기의 부재는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그 결과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셋째, 중앙계획 과정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것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넷째, 정부 관리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특혜(perks), 연고주의(nepotism), 그리고 불법적인 시장거래 등으로 인하여 소득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공산주의(共産主義)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자본주의를 거부하였으며, 기업의 소유자들, 곧 자본가들이 얻는 이윤을 정당하지 않은 소득으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의 끊임없는 이윤 추구가 지나치게 되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낮은 임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며, 결국 시장경제체제는 스스로 붕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마르크스(Marx)는 사적 소유와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인하여 소수의 “가진 자들(haves)”과 다수의 “가지지 못한 자들(have-nots)” 사이에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사회가 형성될 것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Marx)는 공산주의를 이상적인 경제체제로 생각하였다.
공산주의는 국가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경제체제로서, 모든 생산요소를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며 사유재산은 존재하지 않고, 생산된 재화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진다.[3] 이상적인 공산주의에서는 각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재화가 매우 풍부하게 생산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비재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4]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이며 혁명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경제체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마르크스가 설명한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한 국가는 없으며, 자본주의 역시 그가 예측했던 것처럼 스스로 붕괴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비교
많은 나라에 사회주의 정당이나 사회주의적 경제체제가 존재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사회주의 원리의 일부를 받아들인 정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흔히 서로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두 경제체제 또는 이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5] 사회주의에서는 재산이나 주요 생산수단을 중앙정부 또는 국가가 소유하는 반면, 이상적인 공산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을 모든 노동자가 공동으로 소유한다. 또한 사회주의에서는 중앙정부 또는 국가가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반면, 이상적인 공산주의에서는 국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에서 공산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의 경제체제와 마르크스가 이상적으로 제시한 공산주의 사회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구소련(소비에트 연방), 중국, 북한 등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또는 표방하는 국가들에서는 오히려 국가가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생산과 분배를 통제해 왔지만, 마르크스가 생각한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궁극적으로 계급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도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적으로 공산주의를 표방한 국가들의 실제 경제체제는 마르크스가 말한 최종적인 공산주의 사회라기보다 국가가 강력하게 경제를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적 단계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공생주의(共生主義)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말한다. 또한 사도행전 4장 32절은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라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생활을 “공생주의(Commonism)”라고 부른다. 공생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물건을 사용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받았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공산주의의 삶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서는 사적 소유가 인정되지 않고 공동 소유를 원칙으로 하는 반면, 공생주의에서는 사적 소유가 인정된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다만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소유를 자발적으로 교회 공동체에 내놓은 후에는 그것을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인 소유라고 주장하지 않고 공동체의 필요를 위하여 함께 나누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는 보편적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에 속한 지체들로서 서로를 위하여 살아갔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공생주의(Commonism), 곧 공동체적 삶은 나눔과 평등이라는 경제적 원리에 기초한 삶이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돈을 벌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것을 사용한다. 자본주의의 주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소득 불평등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질 수 있다. 이러한 소득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으며,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문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공산주의에서는 개인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생산수단을 사용하여 일하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 공산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을 노동자들 또는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한다. 이러한 공산주의는 이상적인 경제체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동 소유는 열심히 일하여 더 많은 성과를 이루려는 사람들의 근로의욕이나 동기(incentive)를 약화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결과를 자신이 소유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구(欲求)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낮아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의 빈곤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공생주의(Commonism)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생주의는 자본주의의 장점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한다. 다시 말하면, 공생주의에서 개인은 자본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에 따라 돈을 벌고 자신의 재산과 부를 소유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보다 가난한 이웃들을 같은 몸에 속한 지체들로 여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소유한 것의 일부 또는 전부를 공동체나 교회에 내놓아 그들과 기꺼이 나눈다. 이러한 나눔은 정부나 중앙기관에 의하여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진다.[6]
공생주의의 기원
이러한 공생주의의 정신은 나눔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4장 13–21절에서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막 6:30–44; 눅 9:10–17; 요 6:1–14). 만일 예수님께서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사람들과 나누지 않으셨다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굶주렸을 것이고 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아이의 한 끼 식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것을 받아 떼어 나누어 주셨을 때, 제자들과 무리는 모두 배불리 먹는 기적을 경험하였으며 남은 조각도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시면서(마 14:16), 그들도 이 놀라운 나눔의 기적에 참여하게 하셨다. 마태복음 14장 19절은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라고 말한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예수님께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그 기적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서 모든 민족에 대한 심판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자기 영광으로 오실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서로 구분하시고,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마 25:34–36).
예수님께서 무리를 먹이신 사건(마 14:13–21; 16:5–12)과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심판에 관하여 말씀하신 내용(마 25:31–46)은 공생주의, 곧 나눔의 경제적 원리를 가르쳐 준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9장 16–22절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며 떠나갔다(마 19:21–22). 이러한 예수님의 나눔에 관한 가르침과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적 삶은 바울에게로 이어져 그의 나눔의 경제에 나타났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공생주의는 오늘날의 교회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정부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첫째, 공생주의는 모든 사람의 재산을 강제로 공동 소유로 만드는 제도가 아니다. 초대교회의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를 인정하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을 때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나누었다. 그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준 것은(행 2:44–45; 4:32–35) 사유재산을 제도적으로 폐지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발적인 나눔을 통하여 공동체의 필요를 채운 것이었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공생주의는 공산주의의 강제적인 공동 소유와 구별된다.
둘째, 오늘날의 교회는 초대교회가 보여 준 이러한 나눔의 정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성장과 성공을 건물의 크기나 재산, 예산의 규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초대교회는 공동체 안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을 때 그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교회도 교회의 재산과 헌금을 교회 자체의 유지와 확장만을 위하여 사용하기보다, 어려움에 처한 믿음의 사람들과 이웃을 돕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하나님의 한 가족을 이루고 서로의 필요를 돌보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공생주의의 중요한 모습이다.
셋째, 공생주의는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자신의 소유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개인의 소유와 경제적 성취는 인정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을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재물과 능력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자발적으로 돕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공생주의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가진 것을 통하여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며 함께 살아가는 데 있다.
넷째, 이러한 원리는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부를 가진 사람을 단순히 부자라는 이유로 비난해서도 안 되며, 가난한 사람을 그의 가난 때문에 무시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많이 가진 사람은 어려운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도움을 받는 사람도 가능한 범위에서 자신의 능력과 노동을 통하여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의 공생주의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쪽에 의존하는 관계보다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다섯째, 성경의 공생주의는 정부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정부의 역할은 모든 사람의 재산을 소유하거나 모든 사람의 소득을 똑같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이루어진 경제적 결과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만으로 정부의 책임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국민이 납부한 세금과 공공의 자원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며 다시 자립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도와 기회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경제적 약자가 부당하게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섯째, 정부의 지원 역시 단순히 재화를 나누어 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교육과 직업훈련, 일자리와 경제활동의 기회를 통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친 정부 의존이 개인의 책임과 노동의 동기를 약화시키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면서 질병이나 장애, 실업, 재난 또는 경제적 환경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개인의 책임과 공동체의 도움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결국 성경에 나타난 공생주의는 공산주의처럼 사유재산을 폐지하여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경제체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만을 강조하면서 다른 사람의 필요에 무관심한 삶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면서도 그 소유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임을 기억하고, 자발적인 사랑과 나눔을 통하여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함께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따라서 오늘날의 교회와 개인과 정부가 성경의 공생주의에서 배워야 할 핵심은 “모두가 똑같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홀로 버려져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사랑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개인은 자신의 소유를 이웃과 나눌 줄 알며, 정부는 공정한 제도와 필요한 지원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공생주의가 오늘날 우리에게 제시하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1] Irvin B. Tucker, Economics for Today, 10th ed. (Cengage Learning, 2019), 794–795.
[2] 같은 자료, 795–796쪽.
[3] 같은 자료, 796–797쪽.
[4] “Communism vs. Socialism,” 『Diffen』.
[5] 같은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