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8, 2026

시장

시장

 

경제학에서의 시장(市場)

경제학에서 시장(market)이란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여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거나 노동을 비롯한 생산요소를 거래하는 곳을 말한다. 생산물시장(product market)은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시장이며, 요소시장(factor market)은 노동, 자본, 천연자원, 기업가적 능력과 같은 생산요소를 거래하는 시장이다.

제 9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달리 사유재산의 소유를 부정하지 않으며, 중앙의 권위가 가격과 거래량을 결정하기보다 시장에서 그것들이 결정되는 시장경제와 양립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에서 주인으로부터 돈을 맡아 그것으로 장사하도록 한 종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마 25; 눅 19). 이 종들은 주인에게 맡겨진 돈을 가지고 당시의 시장에서 여러 가지 경제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예수님의 비유의 주된 목적이 시장경제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비유는 사유재산과 경제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당시의 시장을 자연스러운 경제적 배경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의 시장

히브리어 ‘마아라브’(מַעֲרָב, maʿarav)는 “상품”(merchandise) 또는 “시장”(market)을 의미한다(겔 27:9, 13, 17, 19, 25, 27, 33, 34). 『King James Version』(KJV)은 에스겔 27장 13, 17, 19, 25절에서 이 단어를 “시장”(market)으로 번역하고, 다른 구절들에서는 “상품”(merchandise)으로 번역한다. 반면 『New International Version』(NIV)은 이 단어를 “상품”(wares)으로 번역한다.[1]

히브리어 ‘사하르’(סָחַר, sachar, Strong 5503)에서 파생된 말은 “교역소”(emporium), 추상적으로는 “교역을 통한 이익”(profit from trade), 또는 “무역”(trade), “시장”(mart), “상품”(merchandise) 등의 의미를 가진다(창 23:16; 34:10, 21; 37:28; 42:34; 왕상 10:28; 대하 1:16; 9:14; 시 38:10; 잠 31:14; 사 23:2, 8; 47:15; 렘 14:18; 겔 27:12, 16, 18, 21, 36; 38:13).[2] ‘사하르’(סַחַר, sachar, Strong 5504, 5505)는 “이득”(gain) 또는 “이익”(profit)을 의미하기도 한다(잠 3:14; 31:18; 사 23:18).[3]

구약성경에서 시장(market), 장터(marketplace), 교역/무역(trade), 이득(gain), 그리고 이익(profit)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교역을 통하여 이익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이익을 얻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었으며 그렇게 얻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정직하고 의로운 방법으로 이익을 얻고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였는지에 따라 복을 주시거나 심판하셨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경제적 이익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이익을 얻는 방법과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시장은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고 조직화된 시장경제의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경제적 기능에서는 현대의 시장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매입하기 위하여 에브론과 토지의 가격을 협의하고 은 사백 세겔을 지불하였으며(창 23:10–16), 요셉의 형들은 미디안 상인들에게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았다(창 37:28). 또한 잠언 31장의 여인은 밭을 살펴보고 그것을 사며 자신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었고(잠 31:16), 자신이 만든 베옷을 팔고 띠를 상인들에게 넘겨주었다(잠 31:24). 이러한 본문들은 구약시대에도 재산과 상품의 매매, 가격의 결정, 생산과 판매를 통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구약성경은 또한 지역을 넘어 이루어진 국제적인 교역도 보여 준다. 솔로몬 시대에는 다른 나라들과 말과 병거 등을 거래하였으며(왕상 10:28–29), 에스겔 27장은 두로를 중심으로 여러 민족이 은, 철, 주석, 납, 가축, 포도주, 양털과 여러 상품을 거래하는 광범위한 국제무역의 모습을 보여 준다(겔 27:12–25). 따라서 구약의 시장에서도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하고, 상품을 생산하고 교환하며, 지역 간에 자원을 이동시키고, 교역을 통하여 이익을 얻는 시장의 기본적인 기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의 시장은 규모와 거래방식에서는 구약시대의 시장과 크게 다르지만, 사람들의 필요와 자원을 자발적인 교환을 통하여 연결한다는 기본적인 경제적 기능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의 시장

유대인 상인들은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 예배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에게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면서 성전 뜰을 시장 또는 장터처럼 만들었다(요 2:14–16).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 16절에서 상인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것은 시장이나 상업활동 그 자체가 아니었다. 성전과 시장은 서로 다른 목적과 기능을 가진 장소였다. 시장은 사람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파는 경제활동의 장소인 반면,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였다. 상인들의 잘못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과 시장의 목적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신약성경이 시장이나 정당한 상업활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기보다, 경제활동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목적에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고린도를 비롯한 이방 도시의 시장에서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가 그렇지 않은 고기와 함께 판매되었다(고전 8; 10:25–26; 롬 14).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서 먹어도 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언제나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25–26절에서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고 권면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우상은 참된 신이 아니므로, 그리스도인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졌는지를 일일이 묻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는 로마서 14장 20–21절에서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음식은 먹을 수 있지만, 자신의 먹고 마시는 행위로 인하여 믿음이 약한 형제나 자매가 실족하게 된다면 그들을 위하여 그것을 먹거나 마시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시장에서 사고 소비할 수 있는가 하는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라, 그 자유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책임 가운데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시장에서의 소비활동에서도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권리와 선택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

‘아고라’(ἀγορά, agora)는 본래 “모으다”라는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의 집회 장소(town meeting place)” 또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resort of the people)”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아고라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고 상품을 거래하는 장소였다. 헬라어로 ‘아고라’(ἀγορά, agora), 라틴어로 ‘포룸’(forum)이라고 불린 시장은 “많은 고대 도시들, 특히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들에 있었던 넓고 개방된 공간으로, 한쪽에는 공공시장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신전, 극장, 주랑, 법정, 목욕탕과 그 밖의 공공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 전체 광장이 흔히 웅장한 모습을 이루었던 곳”이었다.[4] 헬라어 ‘아고라’(ἀγορά, agora)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나 회중 또는 집회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러한 집회가 열리는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신약시대의 시장 또는 장터는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장소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는 공공의 열린 공간이었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시장은 상품을 거래하는 경제적 기능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여러 기능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1) 아이들이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놀던 장소(마 11:16; 눅 7:32);

(2)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고용주를 기다리며, 주로 하루 단위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할 조건과 임금을 협의하던 일종의 고대 노동시장과 같은 장소(마 20:1–16);

(3)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지위와 경건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던 장소(마 23:3–7; 막 12:38; 눅 11:43, 20:46);

(4) 병든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 위하여 데려와지던 곳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요양소나 공공병원과 같은 장소(막 6:56);

(5) 재판에 앞서 예비 심리가 이루어지고, 피고인이 당시 그곳에 있던 관리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을 수 있었던 장소(행 16:19);

(6)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또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던 광장으로서, 일종의 공개 토론장과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장소(행 17:17).[5]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16–17절(참조 눅 7:32–33)에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장터는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모이는 장소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1–16절에서 천국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에 나오는 시장은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나 사업에 노동력이 필요한 사람에게 고용되기를 기다리던 장소였다. 말하자면 실업자들이 임시 일자리를 구하던 노동시장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노동자의 하루 품삯은 한 데나리온이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오전 9시경 시장에 나가 일할 사람들을 고용하였다. 그는 다시 정오경과 오후 3시경에 시장에 나가 더 많은 일꾼을 고용하였으며, 오후 5시경에도 다시 나가 일꾼들을 고용하였다. 이 이야기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인 오후 6시경이면 하루의 일이 거의 끝나는데도 포도원 주인이 왜 오후 5시에 다시 일꾼들을 고용하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주인의 관대함과 자비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시장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포도원 주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일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일꾼들을 부르신다.

어떤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은혜와 공의에 따라 대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평함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때때로 공평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먼저 와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나중에 와서 짧게 일한 사람들과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을 불공평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자신이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먼저 온 일꾼들에게도 그대로 지불하였으며,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선한 뜻에 따라 동일하게 주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말씀으로 끝맺으신다(마 20:16).

이 비유가 천국을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또는 나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을 자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자신의 나라로 부르시며, 먼저 부름받은 사람이나 나중에 부름받은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받아들이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충성스럽고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시장은 오늘날의 사회나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5–7절에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장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또는 사회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말하는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리며, 사람들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평가한다. 따라서 시장, 곧 공동체와 사회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 정직하고 신실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우리가 믿는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일하며 거래하는 시장과 같은 일상적인 사회생활 속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시장은 병든 사람들이 치유받을 기회를 얻기 위하여 데려와지고,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찾아오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시장에서 병든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셨으며,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셨다. 마가복음 6장 56절은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시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만나 고쳐 주셨듯이, 그리스도인도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와 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위로하며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시장은 단순히 경제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이웃의 필요를 발견하고 사랑과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시장은 재판에 앞서 예비 심리가 이루어지고, 고발당한 사람이 당시 그곳에 있던 관리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을 수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였다. 사도행전 16장 19절은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장터는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경제적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관리들 앞에 끌려가 고발과 심문을 받을 수 있었던 공적인 장소이기도 하였다.

시장은 종교적·철학적 또는 정치적 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하고 토론하던 장소로서, 일종의 공개 토론장이자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이러한 시장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사도행전 17장 17절은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장은 오늘날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는 삶의 현장에 비유할 수 있다. 그곳은 우리의 이웃이나 학교, 직장 또는 공동체일 수 있으며, 우리는 그곳에서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2절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권면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시장은 단순히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선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시장은 우리가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파는 장소이다. 구매자 또는 소비자로서 우리의 목표는 주어진 예산제약 안에서 자신의 효용, 곧 만족이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지런하면서도 절제된 소비생활을 해야 한다. 판매자 또는 사업가로서 우리의 목표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정직하고 공정하게 사업을 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한,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는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다. 잠언 11장 1절은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말하며, 잠언 20장 23절도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경이 문제 삼는 것은 이윤 자체가 아니라 속임수와 불공정한 방법으로 이윤을 얻는 행위이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마 25:14–30)와 므나 비유(눅 19:11–27)에서 주인에게 맡겨진 돈을 활용하여 이익을 남긴 종들을 칭찬하신다. 물론 이 비유들의 주된 목적은 시장에서의 이윤 추구를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스럽고 부지런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데 있다. 그러나 비유에서 종들이 맡겨진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은 경제생활에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자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 시장에서 정당하게 사업하여 이윤을 얻는 것은 자신의 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 이익을 하나님의 가계와 이웃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도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 10절에서 제자들에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구매자이든 판매자이든 시장이라는 일상적인 경제생활의 현장에서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더 큰 일에도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섬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시장에서의 경제활동과 하나님의 사역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시장에서도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정직하고 공정하며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청지기직을 실천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 속의 시장은 현대의 자유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에도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성경은 현대적인 의미의 자유시장경제를 직접 가르치지는 않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과 노동을 사용하여 자유롭게 생산하고 거래하며 이익을 얻는 경제활동을 자연스럽게 전제한다. 이러한 원리는 개인의 선택과 사유재산, 자유로운 거래, 노동과 기업가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자유시장경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자유시장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창의적으로 자원을 활용하며 더 나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동기(incentive)를 제공한다. 이러한 시장의 효율성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을 부지런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성경의 청지기 정신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활동을 무조건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거짓 저울과 속이는 거래를 금지하고(레 19:35–36; 잠 11:1; 20:23),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지 말며(신 24:14–15),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명령한다(신 15:7–11). 따라서 자유시장은 자유와 이윤만을 추구하는 시장이 아니라 정직, 공정성, 책임과 이웃 사랑이라는 도덕적 원리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기업과 개인은 이윤을 추구할 자유를 가지지만, 그 자유를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착취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 주어진 풍족함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나눌 책임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역할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정부가 시장의 모든 경제활동을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지만, 통치자가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삼하 8:15; 참조. 롬 13:1–7). 따라서 정부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효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정직하고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와 질서를 세우고 사기와 착취와 같은 불의한 경제행위를 막으며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시장의 자유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투자하려는 동기(incentive)를 약화시키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시장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의와 착취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성경이 현대 자유시장과 정부에 제시하는 방향은 시장과 정부 가운데 어느 하나가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적절한 역할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 노동과 기업가 정신을 통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부를 창출하며, 정부는 정의롭고 공정한 경제질서를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시장과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모두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정직하게 일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의 풍족함을 자발적으로 나눔으로써 효율성과 형평성이 함께 이루어지는 경제를 만들어 가는 데 참여해야 한다.



[1] Strong’s Hebrew Concordance, “4627. maʿarav,” 『BibleHub』.

[2] 같은 자료, “5503. sachar,” 『BibleHub』.

[3] 같은 자료, “5504와 5505. sachar,” 『BibleHub』.

[4] ATS Bible Dictionary, “Market,” 『BibleHub』.

[5] 같은 자료.

 

 

Saturday, September 26, 2026

불확실성의 경제학

불확실성의 경제학

 

불확실성(不確實性)하의 의사결정

경제학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사결정이 항상 확실성(certainty)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불확실성(uncertainty)이나 위험(risk) 아래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학에서 위험은 어떤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측정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반면, 진정한 의미의 불확실성은 그 발생 가능성을 측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사실 우리의 삶은 확실하고 안전하다기보다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알 수도 없다. 더욱이 사람이 죽은 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인간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는다. 그리스도인은 죽은 후에는 영으로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부활한 영적인 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있게 될 것을 믿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눅 23:43),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 영생이 있음을 약속하셨다(요 3:16; 5:24). 또한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고 다시 와서 자신이 있는 곳에 그들도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2–3).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불확실성과 위험은 존재하지만,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지만, 궁극적인 미래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불확실성과 위험 가운데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중요한 삶의 토대가 된다.

성경에서의 불확실성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자신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창 2:17). 따라서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과 죽음에 대한 경고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열매를 먹은 결과로 자신과 하와, 그리고 이후의 인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는 들었지만, 죄와 죽음이 실제로 자신의 삶과 인류에게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아담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하여 자신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며, 그 결과가 이후의 인류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을 미리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는 하와가 그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말렸을 것이며, 자신도 그것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을 때 그녀와 함께 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경계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담의 선택은 하나님의 명령과 경고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모든 결과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아는 대홍수가 실제로 일어날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장차 홍수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아직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이었다. 노아는 500세쯤 되었을 때 방주를 짓기 시작하여(창 5:32; 6:10), 600세에 홍수를 맞았으므로(창 7:11), 약 100년 동안 언제 홍수가 일어날지 알지 못한 채 인내하며 방주를 지었다고 볼 수 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노아의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7절에서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고 말한다.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약 한 세기에 걸쳐 인내하며 방주를 준비하였으며, 그 결과 자신과 가족을 구할 수 있었다.

노아의 이야기는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했을 때 믿음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 준다. 노아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 수 없는 미래를 하나님의 말씀에 맡기고 믿음으로 행동하였다. 이처럼 성경적 믿음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모두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끝까지 인내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과 민족과 복이라는 세 가지 약속을 주셨다(창 12:1-3).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이 세 가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처음부터 확실하게 알고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알지 못했으며 때로는 그 약속의 성취에 대하여 의문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 1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아직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 2절에서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창 15:3). 여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데 대한 아브라함의 답답함과 의문이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거나 그의 행동이 언제나 완전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고 따랐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을 잘 보여 준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셨을 때에는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고 말한다(히 11:17).

아브라함이 자신의 고향을 떠난 결정과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한 결정은 모두 미래의 결과를 미리 알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로 가게 될지 알지 못한 채 떠났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상태에서도 이삭을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중요한 의사결정들은 불확실성 아래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믿음은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믿음이었다.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라합, 사무엘, 다윗을 비롯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미래에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그들의 믿음은 미래의 모든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불확실성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어떻게 끝날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고, 미래를 모두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불확실성이 없는 삶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이론

경제학에서 게임이론(game theory)은 한 개인이나 기업의 의사결정 결과가 다른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확실히 알지 못할 때 각 경제주체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설명하고 연구한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게임이론의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게임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게임에서는 두 명의 합리적인 경기자(player)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도록 각각 분리된 방에 놓인 상태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의사결정을 내린다. 다시 말하면, 두 경기자(players)는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각자의 선택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결과들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처럼 각 경기자가 서로 협의하거나 공동으로 전략을 결정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전략을 선택하는 게임을 비협조적 게임(noncooperative game)이라고 한다.

나는 대학원에서 게임이론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의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을 게임이론을 사용하여 해석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성경을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논의한 학자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 나는 다음의 몇 가지 성경의 사례들을 내가 직접 작성한 보수표(payoff table)를 사용하여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아담과 하나님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게임에 대한 보수표(payoff table)를 구성하기 위하여,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이나 명령이 성취되는 경우와 성취되지 않는 경우를 선험적 가정(a priori assumption)으로 설정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이나 명령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를 가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자신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실 수 있다는 신학적 주장이 아니라, 게임이론의 분석을 위하여 아담의 의사결정 시점에서 가능한 경우들을 가정한 것이다.

 

하나님

성취

불성취

 

 

아담

순종

(+∞, +∞)

(-α1, +θ1)

불순종

(-∞, -∞)

(+α2, -θ2)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창세기 2장 16절 하반절–17절에 나타나 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는 경우,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계속 생명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아담의 보수(payoff)는 무한대(+∞), 또는 극히 큰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의 순종을 매우 기뻐하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무한대(+∞), 또는 극히 큰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즉 하나님께서 아담을 죽음으로 벌하지 않으시지만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도 주어지지 않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아담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므로, 그의 보수(payoff)를 -α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 값은 아담의 성향에 따라 어떤 음수에서부터 음의 무한대(-∞)까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령이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담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한 것 자체는 기뻐하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는 +θ₁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이는 어떤 양의 값을 의미한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는 경우, 아담은 반드시 죽게 되어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아담의 보수(payoff)는 매우 큰 음수 또는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을 매우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참조, 창 6:6–7).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즉 하나님께서 아담을 벌하지 않으시지만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도 주어지지 않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어느 정도의 지식을 얻게 되므로, 그의 보수(payoff) α₂는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령이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담의 불순종 자체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₂는 어떤 음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담은 어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위의 보수표에서 볼 수 있듯이,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항상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우월전략(dominant strategy)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결정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셨지만, 아담은 그 명령을 신뢰하고 따르는 대신 불순종하는 결정을 내렸다. 창세기 3장 6절에서 아담은 하와가 건네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그 결과 아담은 그의 아내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며(창 3:23–24), 생명나무에 접근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잃게 되었다(창 3:22–24).

이러한 아담의 선택은 불확실성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모든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함으로써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단순히 자신에게 가장 큰 보수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2.  아브라함과 하나님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게임에서도 나의 선험적 가정(a priori assumption)은 앞의 경우와 동일하다. 즉,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수도 있고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

 

하나님

성취

불성취

 

 

아브라함

믿음

(+∞, +∞)

(-α1, +θ1)

불신

(-∞, -∞)

(+α2, -θ2)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창세기 12장 1–3절에 나타나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을 얻게 되고 큰 민족을 이루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보수(payoff)는 매우 큰 양수 또는 양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순종을 매우 기뻐하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양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아브라함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므로, 그의 보수(payoff) -α₁은 아브라함의 성향에 따라 어떤 음수에서부터 음의 무한대(-∞)까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브라함이 자신의 말씀에 순종한 것 자체는 기뻐하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₁은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과 큰 민족과 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며, 그의 보수(payoff)는 매우 큰 음수 또는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불순종을 매우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잃지 않게 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날 필요가 없었으며, 고향에 그대로 머물면서 다른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아브라함의 보수(payoff) α₂는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브라함의 불순종 자체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₂는 어떤 음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어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앞에서 살펴본 아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보수표에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의도와 관계없이 항상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우월전략(dominant strategy)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결정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났으며(창 12:4; 히 11:8), 이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믿음으로 행동하였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에 관하여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또한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고 순종하였다(히 11:17–19).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들을 큰 민족으로 이루셨으며,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풍성한 복을 베푸셨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미래의 결과를 모두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사결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결정을 내렸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대조를 이룬다.

3.  사람(Person)과 하나님

일반적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게임에서는 앞에서 설정했던 선험적 가정(a priori assumption)을 제거할 수 있다. 즉,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와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게임이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주장은 성립하지 않게 되며, 그 경우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위하여 바친 시간과 삶은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바울도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소망이 헛된 것이 된다고 말한다(고전 15:16–19).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한다.

 

예수 그리스도/하나님

천국/지옥

천국/지옥 없음

 

 

사람

믿음

(+∞, +∞)

(-α1, +θ1)

불신

(-∞, -∞)

(+α2, -θ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그 사람의 보수(payoff)는 양의 무한대(+∞)이다.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의 믿음과 순종을 매우 기뻐하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양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예수님(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즉 천국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그 사람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므로, 그의 보수(payoff) -α₁은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어떤 음수에서부터 음의 무한대(-∞)까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사람이 믿음을 가진 것 자체는 기뻐하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₁은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예수님(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 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된다. 따라서 그 사람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므로 그의 보수(payoff)는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불신을 매우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예수님(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그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세속적인 삶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으므로, 그의 보수(payoff) α₂는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사람의 불신 자체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₂는 어떤 음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은 어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앞에서 살펴본 아담과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보수표에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도와 관계없이 항상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우월전략(dominant strategy)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의 결정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 아래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믿음과 불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일까?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입게 되는 최악의 손실은 무엇일까? 그 손실에는 예배와 그 밖의 교회 활동에 사용한 시간과 교회에 드린 헌금 등을 포함할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예배와 헌금은 단순한 경제적 비용이나 손실로만 볼 수 없지만, 여기서는 불확실성 아래에서의 선택을 분석하기 위하여 이를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는데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 입게 되는 최악의 손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 손실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죽음과 그에 따른 고통일 것이다. 따라서 두 선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비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선택에서 감수해야 할 수 있는 손실은 제한적인 반면, 믿지 않는 선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확실성 아래에서 최악의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의사결정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단순히 천국과 지옥의 가능성을 계산하여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적 선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있으며, 이러한 의사결정 분석은 불확실성 가운데 믿음과 불신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의 차이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과 연관하여 살펴본 불확실성의 경제학과 게임이론은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제시하는가?

첫째, 우리는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완전히 알 수 없으며, 자신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노아와 아브라함을 비롯한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도 미래의 결과를 모두 알고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의사결정을 하였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직업, 사업, 투자, 결혼, 자녀교육, 건강 등 삶의 중요한 문제에서 미래를 완전히 알지 못한 채 결정을 내려야 한다.

둘째, 불확실성 아래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선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뿐만 아니라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손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게임이론의 보수표가 보여 주듯이, 각각의 선택에는 서로 다른 결과와 보수(payoff)가 따를 수 있다. 따라서 합리적인 사람은 가장 좋은 결과만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여러 결과, 특히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손실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인간의 의사결정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게임이론이 보여 주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가정과 직장, 기업과 시장, 교회와 사회에서 내가 내린 결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다른 사람들의 결정 또한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져올 결과도 고려해야 한다.

넷째, 성경은 불확실성 속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노아와 아브라함은 미래의 모든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미래를 앞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행동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믿음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의 경제학과 게임이론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 영생과 죽음 이후의 삶에 관한 문제는 경제학이나 게임이론만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문제가 참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자신의 삶과 무관한 문제로 여기기보다는 각각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불확실성의 경제학은 미래를 모두 알 수 없는 인간에게 완전한 정보가 주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능한 결과와 위험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며,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신앙에 따라 책임 있게 의사결정을 하며 살아갈 것을 제시한다.



[1] Bob Becking, “Biblical Games: Game Theory and the Hebrew Bible,” 『Ars Disputandi』, Vol. 3 (2003), 91–93. Becking은 이 논문에서 Steven J. Brams의 『Biblical Games: Game Theory and the Hebrew Bible』 (Cambridge, MA, 1982)을 논의한다.

 

 

시장

시장   경제학에서의 시장 ( 市場 ) 경제학에서 시장 (market) 이란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여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거나 노동을 비롯한 생산요소를 거래하는 곳을 말한다 . 생산물시장 (product market) 은 재화나 서비스를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