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경제학에서의 시장(市場)
경제학에서 시장(market)이란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여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거나 노동을 비롯한 생산요소를 거래하는 곳을 말한다. 생산물시장(product market)은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시장이며, 요소시장(factor market)은 노동, 자본, 천연자원, 기업가적 능력과 같은 생산요소를 거래하는 시장이다.
제 9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달리 사유재산의 소유를 부정하지 않으며, 중앙의 권위가 가격과 거래량을 결정하기보다 시장에서 그것들이 결정되는 시장경제와 양립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에서 주인으로부터 돈을 맡아 그것으로 장사하도록 한 종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마 25; 눅 19). 이 종들은 주인에게 맡겨진 돈을 가지고 당시의 시장에서 여러 가지 경제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예수님의 비유의 주된 목적이 시장경제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비유는 사유재산과 경제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당시의 시장을 자연스러운 경제적 배경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의 시장
히브리어 ‘마아라브’(מַעֲרָב, maʿarav)는 “상품”(merchandise) 또는 “시장”(market)을 의미한다(겔 27:9, 13, 17, 19, 25, 27, 33, 34). 『King James Version』(KJV)은 에스겔 27장 13, 17, 19, 25절에서 이 단어를 “시장”(market)으로 번역하고, 다른 구절들에서는 “상품”(merchandise)으로 번역한다. 반면 『New International Version』(NIV)은 이 단어를 “상품”(wares)으로 번역한다.[1]
히브리어 ‘사하르’(סָחַר, sachar, Strong 5503)에서 파생된 말은 “교역소”(emporium), 추상적으로는 “교역을 통한 이익”(profit from trade), 또는 “무역”(trade), “시장”(mart), “상품”(merchandise) 등의 의미를 가진다(창 23:16; 34:10, 21; 37:28; 42:34; 왕상 10:28; 대하 1:16; 9:14; 시 38:10; 잠 31:14; 사 23:2, 8; 47:15; 렘 14:18; 겔 27:12, 16, 18, 21, 36; 38:13).[2] ‘사하르’(סַחַר, sachar, Strong 5504, 5505)는 “이득”(gain) 또는 “이익”(profit)을 의미하기도 한다(잠 3:14; 31:18; 사 23:18).[3]
구약성경에서 시장(market), 장터(marketplace), 교역/무역(trade), 이득(gain), 그리고 이익(profit)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교역을 통하여 이익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이익을 얻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었으며 그렇게 얻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정직하고 의로운 방법으로 이익을 얻고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였는지에 따라 복을 주시거나 심판하셨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경제적 이익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이익을 얻는 방법과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시장은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고 조직화된 시장경제의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경제적 기능에서는 현대의 시장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매입하기 위하여 에브론과 토지의 가격을 협의하고 은 사백 세겔을 지불하였으며(창 23:10–16), 요셉의 형들은 미디안 상인들에게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았다(창 37:28). 또한 잠언 31장의 여인은 밭을 살펴보고 그것을 사며 자신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었고(잠 31:16), 자신이 만든 베옷을 팔고 띠를 상인들에게 넘겨주었다(잠 31:24). 이러한 본문들은 구약시대에도 재산과 상품의 매매, 가격의 결정, 생산과 판매를 통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구약성경은 또한 지역을 넘어 이루어진 국제적인 교역도 보여 준다. 솔로몬 시대에는 다른 나라들과 말과 병거 등을 거래하였으며(왕상 10:28–29), 에스겔 27장은 두로를 중심으로 여러 민족이 은, 철, 주석, 납, 가축, 포도주, 양털과 여러 상품을 거래하는 광범위한 국제무역의 모습을 보여 준다(겔 27:12–25). 따라서 구약의 시장에서도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하고, 상품을 생산하고 교환하며, 지역 간에 자원을 이동시키고, 교역을 통하여 이익을 얻는 시장의 기본적인 기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의 시장은 규모와 거래방식에서는 구약시대의 시장과 크게 다르지만, 사람들의 필요와 자원을 자발적인 교환을 통하여 연결한다는 기본적인 경제적 기능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의 시장
유대인 상인들은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 예배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에게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면서 성전 뜰을 시장 또는 장터처럼 만들었다(요 2:14–16).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 16절에서 상인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것은 시장이나 상업활동 그 자체가 아니었다. 성전과 시장은 서로 다른 목적과 기능을 가진 장소였다. 시장은 사람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파는 경제활동의 장소인 반면,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였다. 상인들의 잘못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과 시장의 목적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신약성경이 시장이나 정당한 상업활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기보다, 경제활동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목적에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고린도를 비롯한 이방 도시의 시장에서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가 그렇지 않은 고기와 함께 판매되었다(고전 8; 10:25–26; 롬 14).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서 먹어도 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언제나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25–26절에서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고 권면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우상은 참된 신이 아니므로, 그리스도인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졌는지를 일일이 묻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는 로마서 14장 20–21절에서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음식은 먹을 수 있지만, 자신의 먹고 마시는 행위로 인하여 믿음이 약한 형제나 자매가 실족하게 된다면 그들을 위하여 그것을 먹거나 마시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시장에서 사고 소비할 수 있는가 하는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라, 그 자유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책임 가운데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시장에서의 소비활동에서도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권리와 선택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
‘아고라’(ἀγορά, agora)는 본래 “모으다”라는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의 집회 장소(town meeting place)” 또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resort of the people)”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아고라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고 상품을 거래하는 장소였다. 헬라어로 ‘아고라’(ἀγορά, agora), 라틴어로 ‘포룸’(forum)이라고 불린 시장은 “많은 고대 도시들, 특히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들에 있었던 넓고 개방된 공간으로, 한쪽에는 공공시장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신전, 극장, 주랑, 법정, 목욕탕과 그 밖의 공공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 전체 광장이 흔히 웅장한 모습을 이루었던 곳”이었다.[4] 헬라어 ‘아고라’(ἀγορά, agora)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나 회중 또는 집회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러한 집회가 열리는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신약시대의 시장 또는 장터는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장소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는 공공의 열린 공간이었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시장은 상품을 거래하는 경제적 기능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여러 기능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1) 아이들이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놀던 장소(마 11:16; 눅 7:32);
(2)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고용주를 기다리며, 주로 하루 단위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할 조건과 임금을 협의하던 일종의 고대 노동시장과 같은 장소(마 20:1–16);
(3)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지위와 경건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던 장소(마 23:3–7; 막 12:38; 눅 11:43, 20:46);
(4) 병든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 위하여 데려와지던 곳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요양소나 공공병원과 같은 장소(막 6:56);
(5) 재판에 앞서 예비 심리가 이루어지고, 피고인이 당시 그곳에 있던 관리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을 수 있었던 장소(행 16:19);
(6)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또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던 광장으로서, 일종의 공개 토론장과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장소(행 17:17).[5]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16–17절(참조 눅 7:32–33)에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장터는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모이는 장소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1–16절에서 천국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에 나오는 시장은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나 사업에 노동력이 필요한 사람에게 고용되기를 기다리던 장소였다. 말하자면 실업자들이 임시 일자리를 구하던 노동시장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노동자의 하루 품삯은 한 데나리온이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오전 9시경 시장에 나가 일할 사람들을 고용하였다. 그는 다시 정오경과 오후 3시경에 시장에 나가 더 많은 일꾼을 고용하였으며, 오후 5시경에도 다시 나가 일꾼들을 고용하였다. 이 이야기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인 오후 6시경이면 하루의 일이 거의 끝나는데도 포도원 주인이 왜 오후 5시에 다시 일꾼들을 고용하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주인의 관대함과 자비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시장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포도원 주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일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일꾼들을 부르신다.
어떤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은혜와 공의에 따라 대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평함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때때로 공평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먼저 와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나중에 와서 짧게 일한 사람들과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을 불공평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자신이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먼저 온 일꾼들에게도 그대로 지불하였으며,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선한 뜻에 따라 동일하게 주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말씀으로 끝맺으신다(마 20:16).
이 비유가 천국을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또는 나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을 자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자신의 나라로 부르시며, 먼저 부름받은 사람이나 나중에 부름받은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받아들이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충성스럽고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시장은 오늘날의 사회나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5–7절에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장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또는 사회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말하는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리며, 사람들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평가한다. 따라서 시장, 곧 공동체와 사회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 정직하고 신실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우리가 믿는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일하며 거래하는 시장과 같은 일상적인 사회생활 속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시장은 병든 사람들이 치유받을 기회를 얻기 위하여 데려와지고,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찾아오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시장에서 병든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셨으며,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셨다. 마가복음 6장 56절은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시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만나 고쳐 주셨듯이, 그리스도인도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와 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위로하며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시장은 단순히 경제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이웃의 필요를 발견하고 사랑과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시장은 재판에 앞서 예비 심리가 이루어지고, 고발당한 사람이 당시 그곳에 있던 관리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을 수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였다. 사도행전 16장 19절은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장터는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경제적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관리들 앞에 끌려가 고발과 심문을 받을 수 있었던 공적인 장소이기도 하였다.
시장은 종교적·철학적 또는 정치적 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하고 토론하던 장소로서, 일종의 공개 토론장이자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이러한 시장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사도행전 17장 17절은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장은 오늘날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는 삶의 현장에 비유할 수 있다. 그곳은 우리의 이웃이나 학교, 직장 또는 공동체일 수 있으며, 우리는 그곳에서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2절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권면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시장은 단순히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선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시장은 우리가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파는 장소이다. 구매자 또는 소비자로서 우리의 목표는 주어진 예산제약 안에서 자신의 효용, 곧 만족이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지런하면서도 절제된 소비생활을 해야 한다. 판매자 또는 사업가로서 우리의 목표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정직하고 공정하게 사업을 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한,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는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다. 잠언 11장 1절은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말하며, 잠언 20장 23절도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경이 문제 삼는 것은 이윤 자체가 아니라 속임수와 불공정한 방법으로 이윤을 얻는 행위이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마 25:14–30)와 므나 비유(눅 19:11–27)에서 주인에게 맡겨진 돈을 활용하여 이익을 남긴 종들을 칭찬하신다. 물론 이 비유들의 주된 목적은 시장에서의 이윤 추구를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스럽고 부지런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데 있다. 그러나 비유에서 종들이 맡겨진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은 경제생활에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자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 시장에서 정당하게 사업하여 이윤을 얻는 것은 자신의 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 이익을 하나님의 가계와 이웃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도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 10절에서 제자들에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구매자이든 판매자이든 시장이라는 일상적인 경제생활의 현장에서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더 큰 일에도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섬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시장에서의 경제활동과 하나님의 사역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시장에서도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정직하고 공정하며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청지기직을 실천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 속의 시장은 현대의 자유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에도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성경은 현대적인 의미의 자유시장경제를 직접 가르치지는 않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과 노동을 사용하여 자유롭게 생산하고 거래하며 이익을 얻는 경제활동을 자연스럽게 전제한다. 이러한 원리는 개인의 선택과 사유재산, 자유로운 거래, 노동과 기업가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자유시장경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자유시장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창의적으로 자원을 활용하며 더 나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동기(incentive)를 제공한다. 이러한 시장의 효율성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을 부지런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성경의 청지기 정신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활동을 무조건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거짓 저울과 속이는 거래를 금지하고(레 19:35–36; 잠 11:1; 20:23),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지 말며(신 24:14–15),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명령한다(신 15:7–11). 따라서 자유시장은 자유와 이윤만을 추구하는 시장이 아니라 정직, 공정성, 책임과 이웃 사랑이라는 도덕적 원리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기업과 개인은 이윤을 추구할 자유를 가지지만, 그 자유를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착취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 주어진 풍족함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나눌 책임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역할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정부가 시장의 모든 경제활동을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지만, 통치자가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삼하 8:15; 참조. 롬 13:1–7). 따라서 정부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효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정직하고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와 질서를 세우고 사기와 착취와 같은 불의한 경제행위를 막으며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시장의 자유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투자하려는 동기(incentive)를 약화시키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시장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의와 착취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성경이 현대 자유시장과 정부에 제시하는 방향은 시장과 정부 가운데 어느 하나가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적절한 역할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 노동과 기업가 정신을 통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부를 창출하며, 정부는 정의롭고 공정한 경제질서를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시장과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모두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정직하게 일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의 풍족함을 자발적으로 나눔으로써 효율성과 형평성이 함께 이루어지는 경제를 만들어 가는 데 참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