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1, 2026

가계의 청지기

가계의 청지기

 

하나님의 최초의 부르심

휴 웰첼(Hugh Whelchel)은 창세기 1장 28절이 인간에게 주어진 청지기의 직분에 대한 최초의 부르심이라고 말한다.[1]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으며, 이를 위하여 그들을 창조하시고 부르셨다. 이러한 복에 대한 부르심은 제9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나타난다(창 9:1, 9; 17:6, 20; 28:3; 35:11).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복을 주시는 한편, 그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 동산을 경작하며 돌보게 하셨다(창 2:15). 이러한 삶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청지기의 직분을 충성스럽고 신실하게 수행하기를 원하셨으며,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셨다.

구약성경의 청지기

청지기는 의사결정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종과 다르다. 종은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해야 하지만, 청지기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관리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창세기 15장 2절에서 아브람은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내 집의 청지기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이었으며,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그를 자신의 집의 “청지기,” 곧 ‘메셰크’(מֶשֶׁק, mešeq)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상속자”로 번역되기도 한다. 히브리어 메셰크는 그 어원이 분명하지 않지만, 어원적으로 “취득(acquisition)” 또는 “소유(possession)”를 의미한다.[2]

구약성경에서 청지기의 역할을 잘 보여 주는 또 다른 대표적인 인물은 요셉이다. 보디발은 요셉을 자신의 집과 모든 소유를 관리하는 자로 세웠다. 창세기 39장 4절은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라고 말한다. 보디발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맡겼으며, 요셉이 관리하는 것 외에는 자신이 먹는 음식밖에 알지 못하였다(창 39:6). 여기에서 우리는 청지기직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소유권은 여전히 주인에게 있지만, 주인은 자신의 재산을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그에게 부여한다.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자신도 자신의 집을 관리하는 청지기를 두었다(창 43:16, 19; 44:1, 4). 이처럼 구약성경에서 청지기는 단순히 주인의 명령만 수행하는 종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를 위탁받아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청지기의 개념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궁극적인 소유자이시며, 인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성경의 청지기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신약성경의 청지기

앞에서 설명했듯이, 헬라어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 oikonomos)는 오이코스(οἶκος, oikos, 집 또는 가계)와 네모(νέμω, nemō, 관리하다 또는 분배하다)의 합성어로, 영어의 “청지기(steward)” 또는 “가계의 관리자(household manager)”에 해당한다. 이러한 의미는 그리스도인의 청지기직을 이해하는 데 잘 들어맞는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가계의 진정한 소유자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를 위탁받아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작은 단위인 자신의 가계를 돌보고 관리하는 위탁된 소유자이자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42–44절에서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청지기는 주인의 모든 재산뿐만 아니라 그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 곧 다른 종들도 돌보고 관리한다. 따라서 청지기 또는 관리자는 주인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과 재산을 모두 맡아 돌보고 관리해야 하므로 책임을 다해야 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 대하여 주인에게 결산할 책무가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48절에서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청지기에게 더 많은 것이 맡겨질수록 그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책무도 그만큼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누가복음 16장 1–13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불의하나 영리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고발을 받았다. 주인은 자신의 재산을 청지기에게 맡기고 그의 능력에 따라 그것을 관리하게 하였지만, 그것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하여 잘 관리하고 더 많은 이익을 얻기를 원하였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 13절에서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가계의 청지기로서 우리는 주인에게 맡겨진 돈을 소유하거나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고 경고하신다.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우리는 돈을 하나님보다 앞에 두어서는 안 된다. 돈은 우리가 섬겨야 할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셔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리하고 사용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9장 11–27절에서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비유와 유사한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는 달란트 비유를 변형한 것처럼 보이며, 이야기의 일부만 전해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떠나기 전에 열 명의 종을 불러 열 므나를 나누어 주었다. 곧 각 종에게 한 므나씩을 주었다. 한 므나는 당시 보통 노동자의 약 3개월 임금에 해당하였으며,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1,500만 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은 종들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그 돈으로 장사하라고 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주인이 맡긴 돈을 가지고 사업가처럼 그것을 운용해야 했다. 왕위를 받아 돌아온 주인은 자신이 돈을 맡긴 종들을 불러 각각 장사를 하여 얼마나 이익을 남겼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눅 19:15). 열 명의 종 가운데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비유에서와 같이 세 명의 종만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첫 번째 종은 주인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더 벌었다고 보고하였다. 주인은 그를 칭찬하고 열 고을을 다스릴 권한을 주었다. 두 번째 종은 다섯 므나를 더 벌었다고 보고하였다. 주인은 그에게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한을 주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자신이 받은 한 므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다고 말하였다. 이에 주인은 그를 책망하면서 누가복음 19장 22–23절에서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나는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인은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종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를 가진 종에게 주라고 명한 후,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고 말한다(눅 19:26).

이 비유에서는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비유와 달리 모든 종에게 동일한 액수인 한 므나씩이 주어졌다. 따라서 종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서로 다른 액수를 받았다는 데서 생길 수 있는 불공평, 질투 또는 미움의 문제는 없다. 그러므로 세 번째 종은 자신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다른 종들보다 적었다는 이유로 변명할 수 없었다. 그는 주인에게 받은 한 므나를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의 문제는 주인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과 불충성, 그리고 게으름에 있었다.

앞에서 다뤘지만, 더 잘 알려진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는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나온다. 이 비유의 상황은 누가복음 19장 11–27절의 므나 비유와 비슷하다. 주인은 세 종에게 각각 그들의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액수의 달란트를 맡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 19장 11–27절에서 각 종에게 한 므나씩 동일하게 나누어 주는 것과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서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액수의 달란트를 나누어 주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공평한 분배인가?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께 받은 재능이나 은사가 적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 각 사람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계의 청지기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나 은사의 많고 적음을 불평하기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충성스럽게 관리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서 주인은 한 종에게 다섯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 두 달란트를, 세 번째 종에게 한 달란트를 맡겼다. 한 달란트는 약 6,000데나리온에 해당하였으며, 한 데나리온은 당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였다. 따라서 한 달란트는 보통 노동자의 약 20년 임금에 해당하며,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120만 달러(또는 16-17억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결산하였다. 첫 번째 종은 자신이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다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칭찬하였다(마 25:21). 두 번째 종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고 보고하였다.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칭찬하였다(마 25:23). 주인은 이 두 종에게 정확히 동일한 말로 칭찬하였다. 이것은 종들이 얻은 성과에 따라 서로 다른 고을을 맡긴 누가복음 19장 11–27절의 므나 비유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자신이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하였다. 이에 주인은 마태복음 25장 26–27절에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라고 그를 책망하였다. 그리고 주인은 그 종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라고 명하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라고 말하였다(마 25:2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청지기인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능과 은사의 종류와 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관리하고 사용하였느냐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이 서로 다른 액수의 이익을 남겼음에도 주인에게 똑같은 칭찬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청지기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과 동일한 성과가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 대한 충성이다.

누가복음 19장 11–27절과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맡겼을 때, 그는 종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고 그 돈으로 장사하거나 그것을 활용하여 일하라고 하였다. 종들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 곧 돈과 노동,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할 수 있는 기업가들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계획하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신다.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맡겨진 분야에서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하고, 노동과 인적 자본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자원을 잘 활용하는 기업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일을 최선을 다하여 수행하며,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위한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익은 반드시 금전적인 이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맡기신 일의 성격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유익과 열매를 포함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여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비밀은 오랫동안 여러 세대에 감추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리킨다.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바울은 디도서 1장 7–9절에서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의 감독이 갖추어야 할 자격을 설명하면서 감독을 “하나님의 청지기,” 곧 ‘오이코노모스 데우’(οἰκονόμος Θεοῦ, oikonomos Theou)라고 부른다. 그러나 교회에서 감독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청지기 또는 관리자로서 이러한 자질을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10–11절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잘 관리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하거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섬기는 데 사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해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자신의 가계를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 또는 관리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과 토지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 인적 자본, 재능과 영적 은사, 그리고 복음과 하나님의 비밀까지 맡기셨다. 청지기는 단순히 주인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종이 아니라, 주인이 맡긴 것을 자신의 판단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관리할 수 있는 일정한 자유와 책임을 가진 관리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재능과 은사와 자원을 맡기시고,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도 허락하신다.

예수님의 므나와 달란트 비유가 보여 주듯이,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얼마나 충성스럽고 지혜롭게 관리하고 사용하였느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많은 것이 맡겨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적은 것이 맡겨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청지기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맡겨진 것에 대한 충성이다. 청지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과 재능을 낭비하거나 땅에 감추어 두어서는 안 되며,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하나님을 위한 유익과 열매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많이 맡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되며, 모든 청지기는 언젠가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 대하여 결산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청지기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위탁받은 청지기로서 자신의 가계를 충성스럽게 관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가계를 더욱 잘 돌보아야 한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며(고전 4:2), 베드로가 가르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를 섬겨야 한다(벧전 4:10). 결국 좋은 청지기의 목적은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충성스럽고 지혜롭게 사용하여 하나님께 유익한 열매를 맺고, 그 모든 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다.



[1] Hugh Whelchel, “Three Key Passages Concerning Stewardship in the Bible,” Institute for Faith, Work & Economics (October 19, 2016).

[2] Strong’s Hebrew Concordance, “4943. mesheq,” 『BibleH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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